수원설화
황구지천
화성의 숨결을 찾아서...
黃口池川
삶의 터전을 찾고 정함에 있어 산천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산은 바람을 막아주는 기능뿐 아니라 땔감의 공급처로 난방과 음식을 익히고 조리하는 에너지를 제공하였으며, 각종 나물과 열매, 약제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에 하천은 농경에 있어 농업용수의 제공과 부녀자들에게는 빨래터이자 삶의 애환을 나누고 각종 생활의 정보를 제공하고 수용하는 장소였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놀이공간으로써의 기능까지도 담당하였다. 그러니 산천은 그 지역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이들에게 있어 그 만큼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주까지는 팔달산, 광교산, 칠보산, 청명산, 여기산 등 수원의 산을 찾아 이름이 붙여진 유래와 설화를 통하여 산이 우리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으며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하여오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이제는 수원시민들의 젖줄이라 할 수원의 하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그 첫 번째로 황구지천을 소개하기로 한다. 황구지천은 군포시 삼성산에서 발원하여 수원 오산 평택을 거쳐 안성천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황구지천은 부곡저수지와 왕송저수지를 흐르다가 수원시 당수동에서 오룡골천, 당수천이 유입되고, 일월 저수지의 일월천과 합류하여 흐르다가, 금곡동에서 금곡천, 호매실동에서 호매실천과 합류하고, 서남부쪽으로 흘러서 권선구 장지동 지점에서 서호천과 합류한 후 대황교동지점에서 수원천, 원천천과 합류한다.
그야말로 황구지천은 수원의 서쪽지역을 관통하여 흐르는 명실상부 수원의 하천 중 가장 긴 하천으로 농경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하천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수원의 농경지역이라면 국철이 지나는 선로를 중심으로 서쪽지역이 된다. 바로 그 지역의 농업용수를 제공하는 중요하천이 황구지천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황구지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도 차이를 보이는 여러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먼저 황구지천은 본래 항곶진(亢串津)에서 유래된 것으로, 항곶포, 항곶진, 항곶포(項串浦)등으로 불리다가 항곶천(亢串川)으로 불리던 것이 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의 이름을 따서 황구지천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또 황구지리는 옛 수원군 율북면 지역으로 ‘누런 흙으로 된 곳’이므로 ‘누렁구지’ 또는 ‘황구지’라 하던 것을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황구지리가 되었다 한다. 다른 유래담도 전하는데, 옛날 용소리 뒷산에 청룡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의 주지 이름이 황구지(黃口地)였다. 이 절의 본당과 승방 사이에는 내[川]가 있었기 때문에 이 절의 스님들은 본당과 승방 사이를 오가기 위해서는 매일 이 내를 건너야만 했다. 그래서 주지가 이곳에 돌다리를 놓았으며, 이 내의 이름을 절 주지의 이름을 따서 ‘황구지천’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승방이 있었던 마을을 황구지리라 불렀다고 하며, 지금 그 다리는 없으나 1970년 제방 축조 공사 때, 다리를 놓았던 돌로 추정되는 큰돌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