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설화
퉁소바위
화성의 숨결을 찾아서
퉁소바위
김용국
생명이 있는 만물은 모두가 한가지다. 크거나 작거나, 어여쁘거나 못났거나, 식물이거나 동물이거나 자신을 닮은 후손을 이 땅에 남기고자 한다. 그 방법도 형태도 참으로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후손을 남기려는 인류의 노력은 그 어느 생명체보다도 절실하고도 가상하다. 전쟁 중에 매독이나 임질 등의 균을 퍼뜨리는 것은 잘 알려진 전략의 하나이다. 이는 어느 순간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절대절명의 상황에서도 후손을 두어 대를 잇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을 이용한 방법이라고 한다. 물론 이에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 그 기저에 깔려있을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성적욕구가 지상의 많은 생명체 가운데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동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른 민족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민중들의 의식이 잘 드러나는 구비전승물 가운데 자식낳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하고 있다. 이는 지리적 조건이 외부세계의 여러 나라들과 수 없는 전쟁을 치루어야 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러한 까닭에 각 지방마다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점지하여준다는 기원의 대상과 그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전국도처에 일명 남근석과 여근석이라 불리는 수 많은 돌들이 그렇고, 미륵불이 그렇다. 그런 까닭인지 용하다는 미륵불 치고 온전한 코를 지니고 있는 것이 없다. 전하는 이야기 가운데 미륵불의 영험함을 제일로 여긴 듯 하다.
미륵불에 관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수원이라고 자식낳기를 소원하는 이들이 없었을 리도, 그러한 기원의 대상이 없을 리도 없다.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의 뒷편에 자그마한 산이 있다. 그 곳을 도로변에서 올려다보면 커다란 바위가 솟아있다. 거기를 할미퉁소바위라 한다.
그곳에서 연무중학교 방향으로 서서 창룡문 쪽을 바라보면 역시 나지막한 산이 있고 바위가 솟아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비퉁소바위다. 여기에는 자식 갖기를 소원하던 부부의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옛날에 어떤 부부가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었다. 그래 이 두 바위에 가서 아이를 갖을 수 있도록 치성을 드리기로 했다. 당시에 사람들은 이 두 바위가 신성하여서 정성을 다하여 소원을 빌면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먹고 부인은 조원동에 있는 바위에 가서 치성을 드리고, 영감은 연무동 쪽 바위에 가서 치성을 드렸다. 치성을 드리되 백 날을 드려야 했다.
“ 서로 그 안에는 만나지 말자. 그래 무사하냐 안 무사하냐 하는 것은 퉁소를 불어서 서로 신호를 하자.” 이랬던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정성껏 치성을 드렸다. 그 부인이 정성을 드린 지 몇 일만 있으면 백일이 되는데 그만 병이 나고 말았다. 그래 퉁소를 불어 남편에게 소식을 전할 기운도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아이를 갖아야겠고 하여서 끝까지 정성을 다하기로 했다.
한편 남편은 아내 쪽에서 퉁소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불안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남편도 몇 일만 있으면 기도를 드린 지 백일이 되기에 아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열심히 치성을 드렸다. 그렇게 하여 백을 채우고 아내가 있는 바위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내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자식갖기를 그렇게도 원하다가 싸늘하게 죽어간 아내의 시신을 붙들고 남편은 하염없이 통곡을 하였다. 결국 아내를 그리워하다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두 부부가 그렇게 애통하게 죽고 난 뒤, 바람이 부는 날이면 퉁소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토록 자식갖기를 빌다가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죽어간 두 부부의 애환이 깃든 곳이 바로 할미퉁소 바위, 할아비퉁소 바위인 것이다.
그 뒤로 그 곳에는 자식갖기를 소원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한다. 그만큼 영험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치 두 부부의 한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지 아니하려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