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설화

칠보산과 황금닭

작성자 : 수원문화원 날짜 : 20/12/08 15:58 조회 : 1750

칠보산과 황금닭

칠보산(七寶山)은 수원의 서쪽에 있다. 라 불리우는 산이 있는데, 그리 높은 편은 아니나 작은 야산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있다. 그 산에는 옛부터 길이 있었다고 하는데, 남양방면에서 수원, 서울 등지로 가려면 반드시 그 길을 거쳤다고 한다. 남양쪽에서는 상인들이 중국 상인과 교역을 하려면 칠보산을 통하여 수원, 한양으로 장사를 다녔다고 한다.

본래 칠보산에는 여덟가지 보물이 숨겨져 있어 그 당시에는 팔보산이라 했는데, 그 소문 때문인지 도처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고 칠보산 주위에는 여러 마을이 운집하여 있었다. 그 중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었으나 장사를 하는 이가 더 많았다. 칠보산 중턱에는 ‘비늘치’라고 불리우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는 도적의 무리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떠돌이들로써 처음에는 보물을 찾겠다고 모여들었으나, 보물은 찾지 못하고 비늘치에 모여 칠보산을 넘는 장사꾼과 행인의 물건을 빼앗는 도적떼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물건만 빼앗고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으나, 점차 흉악해지면서 순순히 응하지 않는 사람은 목숨까지 빼앗는 무서운 도적떼로 변하고 말았다.

도적의 행패가 심해지자 사람들은 대낮에도 여러사람이 모여 무리를 지어 산을 오르내리게 되었다. 칠보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장씨라는 장사꾼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중국인과 교역을 하는 장사꾼이었다. 어느날 장서방은 장사를 마치고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이 같은 장사꾼들과 모이기로 약속한 주막으로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주막에 이르렀으나 함께 떠나기로 되어있던 장사꾼들은 이미 칠보산을 향해 떠났다고 주모가 걱정스럽게 알려주었다.

장씨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앞서간 일행을 뒤따라 길을 떠났다. 칠보산 중턱에 이르기까지도 앞서가는 무리가 보이질 않자 장씨는 차라리 어둡기만을 기다렸다. 산중에 밤은 빨리 왔다. 지척을 분간키 어려운 어둔 밤길을 장씨는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씻으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산길을 올랐다. 간신히 비늘치를 무사히 빠져나간 후 한숨을 돌리며 앉아있을 때였다.

어디선지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장씨는 혹시나 해서 숨을 죽이고 있는데, 다시 닭의 울음소리가 전보다 크게 들렸다. “이상하기도 하다. 이 깊은 산중에 닭이 있을 턱이 없는데”하며 장씨는 호기심에 소리나는 곳이 어딘지를 살폈다. 그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보니 조그만 샘터가 어둠속에서 어렴풋이 보였다.

‘푸드득’ 하는 소리가 나며 무엇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자세히 다가가보니 샘터에서 닭 한 마리가 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가만있거라, 내가 꺼내주마”하고 장씨는 두 팔을 벌려 허우적거리는 닭을 잡아들었다. 순간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장씨의 손에는 돌처럼 딱딱한 감촉과 함께 눈이 부시도록 환한 빛에 그만 넘어질 듯 깜짝 놀랐다. 그것은 누런빛이 나며 영락없는 황금닭이었다.

“아니, 이럴수가” 한참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순간 장씨는 이것이 팔보산의 여덟가지 보물 중 하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틀림없이 황금닭으로 팔보산 보물임이 확실해”하며 장씨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주위를 살폈다. 높이 솟아오는 달빛만이 적막한 산중을 비출 뿐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장씨는 얼른 황금닭을 보자기에 싸 옆구리에 꼭 끼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한참 가다보니 멀리 주막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옳지, 오늘은 저곳에서 하룻밤 묵고 가야지”하며 가끔 늦으면 머무는 주막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장씨는 주모에게 밥을 달래 먹은 뒤 잠자리를 찾았다. 늘 오는 손님인지라 주모는 한적한 구석방을 내주었다. 자리를 펴고 누워 잠을 청하려했으나, 황금닭을 밝은 곳에서 자세히 보고 싶은 호기심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장씨는 조심스럽게 불을 밝히고 보자기를 풀었다. 그것은 닭의 모양을 한 황금닭이 분명했다. 장씨는 행여 꿈이 아닌가 하여 일부러 허벅지를 힘껏 꼬집어보았다. 아픈 것을 보아 생시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주모가 장씨방을 엿보게 되었다. 주모는 본시 비늘치 도적과 한패거리로서 주막을 찾은 손님중 돈이 많은 기미가 보이면 횃불을 치켜들어 신호를 보내 돈이나 값진 물건들을 약탈하곤 했다.

그 주모가 황금닭을 쓰다듬고 있는 장씨의 방을 엿보는 순간,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한패거리가 주막안으로 들이 닥쳤다. 그 패거리는 바로 비늘치도적패로 큰 수확이 없자 홧김에 목이나 축일 생각으로 주막을 찾은 것이다. “더러워 이젠 도적질도 못해먹겠다. 주모, 여기 술이나 좀 주구려” 두목인 듯한 놈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자 주모는 잽싸게 두목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왜 그래, 술은 안주고” 하자 “글쎄 가만히 좀 있어보구려” 주모는 숨을 죽이며 장씨의 황금닭을 엿본대로 일러 주었다. “그게 정말이요?”하며 큰소리로 다그쳐 물었다. 주모는 제발 조용히 하라고 손으로 두목의 입을 막았다. 두목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와 다른 패거리가 모르게 장씨가 묶고 있는 방을 향해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갔다.

한편 장씨는 황금닭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떠드는 소리에 얼른 보자기에 싼 후 조심스레 밖의 동정을 살피는데 “도적질도 못해먹겠다”는 소리에 도적패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짐을 챙겨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런줄도 모르고 두목은 칼을 빼들고 방문을 힘껏 제쳤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장씨는 보이지 않고 등잔불만 바람에 가물거리고 뒷문이 열린 채로 있었다.

두목은 패거리를 불러 주막 안팎을 샅샅히 뒤졌으나 황금닭을 갖고 있는 장씨를 찾지 못했다. 실망한 무리들은 밤이 깊어 찾지 못함을 억울하게 생각하며 내일 날이 밝는대로 찾기로 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주막을 무사히 빠져 나온 장씨는 새벽녁에야 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장씨는 그의 아내에게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장씨부부는 이 황금닭을 가지고 있다가는 큰 변고를 당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부리나케 짐을 꾸려 시오리나 떨어진 한적한 마을로 이사를 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자 이번에는 좀 멀리 떨어진 장자곡이란 마을로 이사를 했다. 한편 황금닭을 손에 넣은 장씨는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장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황금닭을 깊숙히 감춰놓고는 몰래 한밤중에나 잠시 꺼내볼 뿐, 매일 근심과 걱정속에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차라리 황금닭을 중국 상인에게 팔아버리지요” 부인은 걱정스레 얘기했지만 장씨는 힘겹게 얻은 보물을 팔 수 없다며 극구 반대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장에 나가 물건을 팔던 중 비늘치 도적들이 장씨라는 사람을 찾는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는 장사를 하다말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갔다. 부인의 말대로 황금닭을 중국상인에게 팔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집에 도착해보니 집안은 온통 수라장이 된 채 부인이 울상이 되어 있었다.

당황해 하는 장씨에게 부인은 비늘치 도적떼라고 하는 무리들이 들이닥쳐 황금닭을 내놓으라며 갖은 행패를 부리다 내일 다시 오겠다며 집안에 있던 패물이며 돈꾸러미를 몽땅 챙겨가 이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장씨부부는 황금닭을 챙겨 산길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는데 갑자기 앞에서 여러명의 도적무리들이 길을 막았다. 비늘치 도적들은 장씨가 그 길로 도망칠 것을 알고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던 것이다. “자 어서 내려놓으시지” 도둑들은 칼을 빼들고 위협을 하자 장씨의 아내는 빨리 내놓으라고 눈짓을 했지만 장씨는 황금닭을 꼭 부둥켜 안은 채 도적들을 향해 소리질렀다. “천하의 못된놈들, 만약 네 놈들이 이 물건에 손을 댄다면 하늘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순간 장씨는 도적이 휘두른 칼에 쓰러졌다. 부인이 달려들자 부인도 그자리에 칼을 맞아 쓰러졌다.

도적들은 달려들어 장씨가 갖고 있던 황금닭을 내려다보았다. 도적들은 큰 횡재를 만났다고 떠들어댔다. 순간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천둥과 번개를 치자 도적들은 장씨의 말대로 하늘이 벌을 내린다 싶어 황금닭을 팽개쳐 둔 채 달아나 버렸다.

한참 후 천둥, 번개가 멎은 후 괴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빛을 발하던 황금닭은 집에서 기르는 닭은 변하여 한번 크게 목청껏 울더니 이내 죽고 말았다.

후에 사람들은 팔보산 보물중 황계가 부정을 타 없어지고 말았다며 산신제를 올려 신의 노여움을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후로는 매년 흉년이 들어 인심이 흉흉하고 병이 나돌아 죽는이가 많았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칠보산에 시월 초하루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린후부터는 풍년이 들고 질병도 없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