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설화
소나무 마다 콩볶음
소나무마다 콩볶음
올 해 쌀 생산량이 전년 대비 10%가 감소될 것이라고 한다. 쌀 생산량이 전년보다 감소한 것은 1998년 이후 4년만에 있는 일로, 농림부는 벼 재배면적이 2.8% 줄어든 데다, 벼 낟알이 형성되는 7월에 일조량이 부족했고, 벼이삭이 나온 8월 이후에도 태풍 루사와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으로 생산량이 감소의 이유를 풀이했다.
이에 따라 쌀 재고량도 자연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쌀재고량은 세계식량농업기구(FAO) 기준 권장량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라 한다. 그러니 아직도 우리 정부의 걱정은 쌀 생산량의 감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고량에 더 문제의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지나치게 남는 것도 부족함만큼이나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쌀 생산량의 감소를 두고 소비자나 정부가 갖는 생각은 농민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소비자의 입장에서야 쌀값에 큰 변동이 없다면 그리 걱정될 리가 없는 것이다. 물가가 안정된다면 소비자들에겐 더 없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소비자와 달라야 한다. 그에 따른 처신도 달라야 한다. 어쩌면 농민들은 쌀만 먹고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해의 농사를 망친 농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이다. 애써 지은 농작물을 수확하지 못하는 데다가 농경지며 가옥이 유실된 농가의 입장에 한 발짝만이라도 다가서 보면 말이다.
자연재해라고는 하나 태풍 루사와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했다. 지난해의 수해로 인한 복구에도 늑장을 부린 것이 사실이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도 정쟁이나 일삼았지 정작 농민들과 수해를 입었던 국민의 고통은 나 몰라라 한 것이 또한 사실 아닌가? 서로 물고 뜯으면서 흠이나 잡으려 했지 정작 뿌리 채 뽑아버렸어야 할 재난의 가능성에 대한 대비에는 90% 미달 된 듯하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옛 우리의 조상들은 백성을 보호가 필요한 어린아이로 보고 돌보고자 했다. 그러면서 백성에게도 의무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신라시대의 대표시가인 향가에 있다.
충담사가 지었다는 <안민가>가 바로 그 예가 된다. 작품에서 “임금은 아버지고, 신하는 어머니이며, 백성은 어린 아이라 했다. 나라가 태평성대를 구가하려면 바로 백성들의 생활을 잘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백성은 백성다워야 한다.”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 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정조께서 백성들이 굶주림에 지쳐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생활하는 것을 보다 못해 소나무 가지마다 콩을 볶아 달아 놓았다는 설화이다. 물론 여기에는 근본적인 대책이 못되었다는 점과 그 것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역에 자라는 소나무를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였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임금인 정조가 굳이 콩을 볶아 소나무 가지마다에 달아놓음으로써 백성들에 의한 소나무의 피해를 줄이고자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볼 수 있다. 임금의 명만으로도 소나무는 보호될 수 있었던 때문이다.
흉년이 들면 백성들은 먹을거리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래 소나무의 껍질을 벗겨 송기(松肌)떡을 해 먹거나 송기죽을 쑤어 먹었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은 한참 자라나는 소나무 윗대를 꺾어 먹기도 하고, 봄에 물이 올라 단물이 나는 소나무의 속살을 씹어먹었다.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이렇게 단물을 빨아먹은 소나무 가지는 놀이용으로도 사용을 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음을 알지 못했던 정조께서 백성의 배고픔도, 소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도 해결하기 위하여 콩을 볶아 주머니 속에 넣어 소나무 가지마다 걸어두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콩을 따서 먹고 소나무를 꺾지 말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정조의 명이 백성들을 사랑함에서 기인된 것이라 할 근거는 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 수원, 수원을 건설하시면서 가뭄에도 백성들이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많은 저수지를 축조하셨음이 그 근거가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