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설화

노송지대의 돌무데기

작성자 : 수원문화원 날짜 : 20/12/08 13:34 조회 : 1236

화성의 숨결을 찾아서

노송지대의 돌무데기

김용국

파장동의 법화당에서 산업도로를 따라 남으로 내려오다 보면 우측으로 길이 하나있다. 노송지대로 들어서는 길이다. 노송지대는 정조께서 화성을 축성하고 신도시인 수원을 가꾸기 위해 내탕금(內帑金-임금이 개인적 용도로 쓰는 돈) 1,000냥을 하사하여 조성한 것이다.

청주에 들어서면 길가의 플라타너스 터널이 오가는 이들을 맞이하듯, 수원에 들어서면 200년 이상 된 노송이 양 길가에서 반긴다. 겨울철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하는 승경(勝景)이 아닐 수 없다.

노송지대에는 유달리 전하는 이야기가 많은 지역이다. 이는 그만큼 이 지역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또한 유서가 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선 노송 한 그루에 그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산업도로에서 노송지대로 갈라져 들어오는 길가에 곧게 자라있는 노송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가 오늘에 남게된 데에는 다음의 사연이 있다.

80여 년 전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베어가려고 하다가 나무가 어찌도 곧고 보기가 좋던지 차마 벨 수가 없어 그냥 둔 것이라 한다. 이렇듯 우리의 역사는 한 사람의 순간적 판단에 의해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인가 보다. 이 한 그루의 소나무가 노송지대로 들어서는 초입임을 알리는 이정표의 구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하는 이야기 가운데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삼풍농원의 맞은 편에는 일명 ‘도깨비터’라 불리는 자리가 있다. 전하는 말에 이 곳은 천하의 길지(吉地)로 부를 가져오는 곳이라 한다. 그런데 정작 지금 이 곳에 거주하고 있는 이는 그리 풍족해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도깨비가 매년 자신을 위해 제를 올려 줄 것을 바라고 있는데 이 곳의 사람이 제를 올려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돌무데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돌무데기는 이목동 버스정류장에서 동원고등학교 방향으로 있었던 것으로 서낭당이라고도 불리었음을 보면 이 마을의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던 듯 하다. 한편 이 마을에는 작은 서낭과 큰 서낭이 있었고 돌무데기는 큰 서낭 바로 옆에 있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아무튼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부자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부자가 장자임으로 이 집을 장자댁이라 불렀다. 집의 위치가 옛날에는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데다 부자인 관계로 많은 손님이 드나들었다. 이 집의 며느리는 손님을 치르느라 힘도 들고 재산이 축나는 것이 언제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집의 며느리는 시주하러 온 스님에게 손님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스님이 “왜 없습니까. 있지요.” “어떻게 하면 되죠.” 며느리가 재차 물었다. “이 집에서 보니 저기 수리산(修理山-안양에 있는 산)의 두 봉우리가 보이는데 이는 이 집에 도둑놈이 날 징조다. 그러니 이 집에서 수리산의 봉우리가 보이지 않게 하면 손님의 발길도 끊어지고 집안의 화도 면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일러주었다.

이에 며느리는 집안의 어른들께는 손님의 발길을 끊을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고, 장차 자손 중에 도둑놈이 나온다고 하니, 수리산봉우리가 보이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했다. 집안에서는 회의를 한 결과 사람들을 동원하여 수리산의 봉우리가 보이지 않도록 돌무더기를 쌓았다.

수리산봉우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정말로 손님의 발길이 끊어졌다. 돌무더기를 쌓느라고 재산도 많이 줄었고, 손님의 발길이 끊기면서 이 집도 망해버렸다. ‘사람의 집에는 사람이 끓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찌 보면 시답잖은 말 같으나 이는 세상살이의 이치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돼지우리엔 돼지가 들끓어야 하듯, 사람의 집엔 사람으로 들끓어야 한다. 그 교훈이 이 한편의 설화 속에 담겨져 있다.

노송지대도 예전만큼 사람의 발길이 잦지가 않다. 개발의 논리에 한 켠으로 비껴선 노송들이 200여 년 세월의 풍상을 견디면서 함묵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노송들을 자식과 같이 보살피고 있는 의로운 분이 계시다는 점이다.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김인기 옹이시다. 지면을 통해 어르신께 다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