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설화

구렁골

작성자 : 수원문화원 날짜 : 20/12/08 13:22 조회 : 1228

02-07-08 화성의 숨결을 찾아서...

욕심 때문에 망해버린 구렁골의 천석꾼

김용국

‘구렁골’은 영통에 있던 고개로 이 곳에는 욕심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 천석꾼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구렁골은 뒷골과 안영통 사이에 있었으며, 뒷골은 독침산의 북동쪽에 있던 마을이다. 여기서 독침산이란, 영통 열병합발전소 동남쪽의 산으로, 뱀이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 뒷골이란 예전에 이 마을에서 수원, 용인, 태안, 오산 그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2,30리 길을 걸어가야 할 만큼 교통도 좋지 않고 후미진 곳이라는 붙여진 이름이다. 또 구렁골이란 구렁이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기도 한다.

한편 이 고개가 천석꾼과 관련이 된다는 것을 뒷받침함직한 일화가 전하기도 한다. 해방 후, 뒷골과 황골 사람들이 이 고개를 다시 이용하기 위해 고개에 쌓여있던 돌들을 치웠다. 그 과정에서 고개에 쌓여있던 돌들이 자연적으로 쌓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쌓여졌음을 알 수 있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구렁골에서 치워낸 돌로 뒷골에 우물 2개를 쌓을 만큼의 많은 돌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고개의 돌을 치우는 과정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던 구렁이가 허리가 잘린 채로 나왔다 해서 ‘구렁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천석꾼 부자에 얽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곳에는 천석꾼의 부자인 신씨가 큰집을 짓고 살았는데 자꾸 거지들이 몰려와서 동냥을 달라고 하니까 아예 거지들이 올 수 없도록 천석꾼이 고개를 막아 버렸으며, 그런 뒤 신씨의 집안은 망했고 광주로 옮겨갔다. 후에 사람들이 다시 통해을 위해 고개길을 다시 뚫었다. 이 때 피가 흘렀는데, 구렁이 허리가 잘려서 흐른 피라고 하여 ‘구렁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독침산이란 이름도 구렁골이란 이름도 모두 구렁이와 관련된 지명인만큼 이 지역에 유난히 뱀이 많았던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 이 고개 근처에는 천석꾼의 부자인 신씨(申氏)가 살았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고개인데다 신씨가 천석지기인 터였기에 이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은 으레 천석꾼 신씨의 집에 많이 찾아와 쉬었다 가곤 하였다. 그러니 매일 손님을 맞아야 하니 그 집은 손님 접대하는 일에 많은 일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 집 며느리는 손님을 대접하는 일도 힘겹거니와 재산이 축나는 것도 속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 늘 어떻게 하면 손님을 줄일 수 없을까 갖은 궁리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나가던 스님이 찾아와 잠시 쉬어가게 되었다. 며느리는 스님을 대접하고는 스님에게 손님을 줄이는 방법을 일러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이미 이 집의 사람들이 욕심이 과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 스님은 며느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며느리가 그 구체적인 방법을 묻자, 스님은 뒷골과 황골(안영통)을 연결하는 고개를 막아 버리고, 부엌문 양쪽에 숯을 한 가마씩 묻어 놓고 숯이 깨지도록 밟고 다니면 손님이 찾아들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며느리는 여간 기쁘지 않았다. 이제 재산도 지키고 손님도 끓지 않을 것이니 참으로 신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며느리는 사람들을 사서 이 고개에 돌을 쌓아 막아 버리고 부엌에 숯을 묻어 밟고 다녔다. 그랬더니 과연 놀랍게도 집안에 찾아드는 손님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손님이 줄었는데도 재산은 늘지 않고 오히려 점점 재산을 줄어만 갔다. 그리곤 집안은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동안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어떻게 하면 돈을 벌고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지를 말하여 주었는데, 집안을 찾는 손님이 없어지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던 탓에, 재산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조금씩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천석꾼의 집안은 망하고 말았다.

결국 손님들은 천석꾼이 직접 정보를 찾아다녀야 하는 비용을 줄여주었던 셈이었다. 그런데 그런 손님이 오는 것을 귀찮아하고 그들을 내치려 했으니... 목전의 작은 이익 때문에 오히려 더 큰 것을 잃고만 것이다.

뒷골이란 지명이 외진 곳을 의미했듯, 그 외진 곳에서 스스로 정보를 차단하고 만 것이었다.

혹 내 곁에 지금 귀찮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거든 그가 내가 무엇을 주고 있는지 생각하여 봄직하다. 비단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 정보를 제공하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타산지석의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