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제18차 역사문화탐방 안내
작성자 : 수원문화원
날짜 : 06/12/04 14:58 조회 : 3197
제18차 역사문화탐방은 충청남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동쪽은 공주시, 서쪽은 보령시, 남쪽은 부여군, 북쪽은 예산군과 인접한 충청남도 청양군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청양군은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국보 제58호), 장곡사 미륵불괘불탱(국보 제300호), 청양석조삼존불입상(보물 제197호)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많은 곳이며, 칠갑산도립공원을 중심으로 칠갑산 자락에 위치한 장곡사 등 명승고적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번 제18차 역사문화탐방에 관심 있는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 시 : 2006년 12월 13일(수) 오전 8시 정각 출발
?◎ 장 소 : 충청남도 청양군(정산구층석탑, 장곡사, 칠갑산의 장승들)
?◎ 출발장소 : 수원문화원(수원시민회관 주차장)
?◎ 회 비 : 회원 20,000원 / 비회원 30,000원 선납(※중식 포함)
?◎ 인 원 : 45명 (선착순 마감)
?◎ 준 비 물 : 카메라, 필기도구
?◎ 접수 및 문의 : 수원문화원 사무국 ☎ 244-2161∼3
? ?★★★ 역사문화탐방 회비 납부는 계좌이체가 가능합니다. ★★★
?????( 기업은행 331-000534-01-206 / 예금주 : 수원문화원 )
※ 문화탐방 코스는 현지 사정에 의하여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청양문화유적답사
???????????????????????????정리 : 박천우(장안대학 한국사교수)
1. 청양개관
이름에 ‘푸를 청’ 자가 들어간 곳은 나무가 많고 공기가 맑으며 대부분 심심산골에 위치한다. 충남 청양, 경북 청송, 청도가 그러하다. 또 ‘볕 양’자는 볕이 잘 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따라서 청양은 ‘푸르고 밝은 곳’이란 좋은 의미를 지닌 고장이다.
청양은 충남의 한 가운데 위치하며 북쪽으로 서산․예산, 동쪽으로 공주와 길게 닿아 있다. 남동쪽으로는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와 맞대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보령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청양 한 복판에 있는 칠갑산이 청양을 동과 서, 곧 청양과 정산으로 가르고 충청남도 자체도 동북과 남서로 갈라놓는다. 예전에는 칠갑산 한티고개를 넘는 것이 큰일이었지만 지금은 고개를 통과하는 터널이 뚫려 더 이상 교통의 오지는 아니다.
청양 사람들의 삶은 이 칠갑산과 연결되어 있다. 부여와 가까워 백제 때는 부여의 경제, 문화권 내에 있었다. 고려 때도 이어져 청양 읍내에 고려 초기의 석조삼존불입상이 있고 정산면 서정리에는 구층석탑이 있다. 천년 고찰 장곡사에는 철불과 금동불이 모셔져 있다.
청양 사람들은 칠갑산에 기대고 살아온 만큼 마을 곳곳에는 많은 장승이 세워져 있다. 산이 깊은 곳에서는 산신제를, 장승을 모신 곳에서는 장승제를, 풍년을 기원하는 곳에서는 동화제를 지내며 마을의 화합과 안녕을 비는 마을 굿이 성행했다.
2. 정산 구층석탑(보물 제18호)
정산면 서정리에 우리나라에 온전히 남아 있는 방형 석탑인 구층석탑이 있다. 구층탑은 그리 흔하지 않으며 대표적으로 오대산 월정사의 팔각구층석탑이 유명하다. 신라시대이래 5층 이상의 탑은 대개 옛 백제 지역에 산 고려 사람들이 세웠다.
정산의 구층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6m높이로 가파르게 9층이 올라갔지만 지붕돌이 점차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단 아래층 네 면에 안상이 둘씩 조각되어 있다. 동쪽 면 안상 안에 소박한 꽃무늬가 있다. 1층 몸돌이 그 위의 것보다 거의 세 배 이상 높은데 이는 시각적으로 비례를 고려한 장치다. 지붕돌은 얇으면서도 처마 끝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3. 장곡사
대치고개를 넘어 칠갑산을 동서로 가르고 나와 다시 남쪽 골짜기에 장곡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특이하게도 대웅전이 두 개 있다.
신라 문성왕 12년(850)에 보조선사가 창건했다. 고려 때 유물이 많아 그 때 번성한 것으로 보인다. 절 마당 왼쪽에 강당 건물인 운학루가 있고 그 맞은편에 하대웅전이 있다. 하대웅전 왼쪽 가파른 계단 위에 상대웅전과 응진전이 있다. 현판은 대웅보전이지만 편의상 상대웅전, 하대웅전으로 불린다.
하대웅전(보물 제181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조선 중기 건물이다. 다포계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법당 안에 금동약사여래가 모셔져 있다.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은 1346년에 조성되었다. 얼굴 생김과 어깨선이 둥글고 부드럽다. 옷은 어깨를 다 감싼 통견이다. 전체적으로 단아하면서 당당한 모습이다. 오른 손에 약합을 들고 있어서 약사불임을 알 수 있다. 대좌와 광배는 없고 몸길이는 88cm이다. 법당과 비교했을 때 규모가 빈약해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이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상대웅전(보물 제162호)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다포집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넓은 충남 지역의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기둥은 고려시대, 기둥 위의 구조는 조선시대의 것이다. 법당 안에는 고려시대의 까만 전돌이 깔려 있다.
상대웅전 안에는 부처님이 셋이나 모셔져 있다. 원래 석불 2구, 금불 3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비로자나불, 약사불의 철불 두 분과 아미타여래소조불 한 분이 있다. 대웅전에는 원래 석가여래를 모셔야하는데 이곳은 불교의 교리에 따르지 않았다.
가운데 철조비로자나불(보물 제174호)은 9세기에 유행한 비로자나불 신앙을 받아들인 고려 전기의 불상이다. 높이가 60cm이지만 인상이 부드럽고 유순하지 않다. 부처의 이상적인 상호가 아니라 현실적이 인상의 철불상은 신라 하대 이후 고려시대에 많이 모셔졌다. 철 위에 금을 씌워서 인상이 많이 누그러졌다. 등 뒤에 나무광배가 불꽃 모양으로 화려하고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오른 쪽 철조약사불 좌상(광배, 대좌와 함께 국보 제58호로 지정)은 철조비로자나불과 마찬가지로 금을 입혀서 철불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이 좌상이 국보가 된 것은 대좌의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대좌가 흔치 않은 방형대좌이고 네 귀퉁이에 귀꽃이 일어서서 고려 석물의 특징을 발휘하고 있다. 이중 지대석 위에 귀꽃이 솟은 복련, 중대석 네 면에는 한 면마다 안상을 2구씩 조각하였다. 상대는 다시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지대석 네 모서리에 기둥을 꽂은 자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목조불감 안에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 높이는 2.32m이고 부처님은 91cm이다.
한 손은 무릎 위에 얹고 또 한 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고 있으나 편 손 위에 약합을 놓았던 자국이 있다. 옷은 한쪽 어깨를 내민 우견편단이다. 신라 하대에 조성된 것으로 단호한 표정과 당당한 신체가 특징이다. 광배는 비로자나불상과 마찬가지로 후대에 나무광배를 해 달았다. 섬세한 나무 조각과 역동적인 색채가 조선시대 목각기술의 유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4. 청양 석조삼존불입상(보물 제197호)
청양읍의 주산은 237m의 우성산이다. 이곳에 석조삼존불입상이 있고, 백제 때 옛 산성(충남 기념물 제81호)도 있다.
석조삼존불입상은 크기가 매우 큰 데 본존불의 키가 3m나 된다. 어깨에 광배가 떨어져 나가고 마모도 많아서 당시의 모습은 알아보기 어렵다.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꺾어 든 자세를 하고 있다. 얼굴이 길고 코가 길고 입술이 두툼하며 옷주름이 부드럽다. 광배는 아무 장식이 없으며 발아래 대좌는 독특하게 사각을 이루는데 한 면마다 안상이 3구씩 조각되어 있다.
좌우 보살은 키가 약 2.2m로 허리를 조금씩 틀어 자세가 유연하다. 옷주름과 조각이 세심하다. 조각은 유려하지만 전체적으로 신체가 편편하고 도식적인 면도 있어서 대체로 고려 전기 것으로 보인다.
석조삼존불입상 아래쪽으로 아담한 삼층석탑(충남 문화재자료 제148호)이 있는데 단층 기단 위에 3층을 올렸다. 일층 몸돌에 문고리를 잠근 문비를 새겨놓았다. 얇은 지붕돌이 직선을 뻗은 점은 백제탑의 영향을 보인다. 추녀 폭이 탑신에 비해 넓은 점 등이 고려 초기 옛 백제 지역 석탑의 특징을 보여준다.
5. 칠갑산의 장승
칠갑산은 청양의 대치, 정산, 장평면에 걸쳐 있다. 561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봉우리가 줄을 이었다고 해서 아흔아홉 고개로 불릴 정도로 골짜기가 깊다.
정산에서 칠갑산 한티고개로 넘어가는 곳곳에 장승들이 많이 서 있다. 칠갑산의 산이 깊고 나무가 좋아서 곳곳에 나무 장승이 모셔져 있다. 산골이 깊은 덕에 전쟁 때나 미신으로 치부되어 뿌리 뽑힐 때도 온전히 지켜질 수 있었다. 마을마다 장승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송학리 장승은 다른 곳의 장승들 보다 키가 훤칠하다. 코와 입, 턱을 비스듬히 파내어 얼굴을 만들고 눈은 동그랗게 파내 조형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오른쪽에 사모를 쓴 것이 남장승이며 ‘서북방백흑제축귀대장군(西北方白黑帝逐鬼大將軍)’이라 쓰여 있고 왼쪽은 여장승으로 ‘동남방청제축귀대장군(東南方靑帝逐鬼大將軍)’이라 씌어 있다. 장승 세 기와 진대(솟대, 오릿대, 짐대는 모두 같은 말로 마을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두 기가 새끼줄로 묶여 있다.
용두리 장승은 각각 두 쌍 씩이 오릿대에 함께 묶여 서 있다. 해마다 남녀 한 쌍을 만들어 전 해에 만든 것과 나란히 세우고 그 전 해 것은 뽑아 장승 뒤에 눕혀 놓는다. 남장승은 복두를 쓰고 수염이 있다. 여장승은 족두리 모양에 비녀를 꽂고 있다. 남장승의 몸에는 ‘천상천하축귀대장군지위(天上天下逐鬼大將軍之位)’라고 써서 하늘과 땅 속의 귀신을 물리치는 힘을 지니도록 했고, 여장승의 몸에는 땅 위 다섯 방위의 귀신을 물리치도록 ‘동서남북중앙축귀대장군지위(東西南北中央逐鬼大將軍之位)’라고 써 넣었다.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흘에 새로 장승을 모시고 장승제를 지내며 한 해의 복을 빈다.
천장리에는 모두 관모를 쓴 남장승만 있으며 솟대는 없다. 눈 부분에서 파 내려서 코만 우뚝 하다. 몸체에 ‘동방청제축귀대장군지위(東方靑帝逐鬼大將軍之位)’라고 써놓았다. 한 방위만을 써 놓은 것은 흔하지 않은 데 이곳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외부로 통하는 길이 동쪽뿐이어서 세웠다. 이곳은 산신제가 중심이고 장승제는 그에 따라 한다.
대치리에는 여덟 기의 장승이 양쪽에 포진해 있다. 턱밑 부분을 깎아서 얼굴과 몸을 구분하였고 다른 조각이 없다. 남녀 상의 차이는 수염으로 구분하다. 남장승은 천상천하를 지키는 장군이고 여장승은 땅위의 다섯 방위를 지키는 장군이다. 이곳에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새로 장승을 세우고 장승제를 지낸다.
칠갑산의 마을 굿은 미신이나 형식적인 의례가 아니라 신나는 놀음이며 신명을 풀어놓는 장이다. 마을이 위치하는 입지와 형편에 따라 산신제, 장승제, 동화제 등을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