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제15차 역사문화탐방 안내
작성자 : 수원문화원
날짜 : 06/05/10 11:42 조회 : 3671
본원에서는 살아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조상들의 발자취를 찾아 매달 문화유적지 탐방을 하고 있습니다.
제15차 역사문화탐방은 후백제의 도읍지이자 조선왕조의 발상지인 예향의 도시 전라북도 전주시로 떠나고자 합니다.
수원문화원 역사탐방에 관심있는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풍남문 ◈
- 종 목 : 보물 제308호
- 소재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 2가 83-4
- 시 대 : 조선시대
읍성은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는 고을을 둘러쌓았던 성을 말한다.
옛 전주읍성의 남쪽문으로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영조 10년(1734) 성곽과 성문을 다시 지으면서 명견루라 불렀다.
‘풍남문(豊南門)’이라는 이름은 영조 43년(1767) 화재로 불탄 것을 관찰사 홍낙인이 영조 44년(1768) 다시 지으면서 붙인 것이다.
순종 때 도시계획으로 성곽과 성문이 철거되면서 풍남문도 많은 손상을 입었는데 지금 있는 문은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규모는 1층이 앞면 3칸·옆면 3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평면상에서 볼 때 1층 건물 너비에 비해 2층 너비가 갑자기 줄어들어 좁아 보이는 것은 1층 안쪽에 있는 기둥을 그대로 2층까지 올려 모서리기둥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법은 우리나라 문루(門樓)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방식이다.
조각 모양과 1층 가운데칸 기둥 위에 용머리를 조각해 놓은 점들은 장식과 기교를 많이 사용한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옛 문루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 경기전 ◈
- 종 목 : 사적 제339호
- 소재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 시 대 : 조선
경역은 태조의 영정(보물 931)을 봉안한 경기전과 그의 22대조이며 전주이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肇慶廟)로 나뉜다. 당초의 전각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것은 1614년(광해군6)에 중건한 것이다. 1771년(영조 47)에는 조경묘를 세워 이한 부부의 신위를 봉안하였다. 경기전 정전은 지대석(地臺石)과 면석(面石) 및 갑석(甲石)으로 이루어진 춤 높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계(多包系) 형식의 맞배집이다. 그 전면에 바로 붙여 춤이 약간 낮은 기단을 정전 기단과 접속시켜 앞으로 돌출시키고 그 위에 첨각(添閣)을 두어 마치 능침(陵寢)의 장자각(丁字閣)과 같은 평면을 하였다. 이 첨각 기단의 동 ·서 ·남면에는 각 1개씩 계단을 두어 벽돌을 깐 보도와 연결하였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경기전 조경묘 도형의 그림을 보면 지금은 없어진 부속건물들과 별전이 있고, 서남쪽에 전사청(典祀廳) ·동재 ·서재 ·수복방 ·제기고 등과 북동쪽에는 별전과 조산(造山)을 만드는 등 광범위한 것이었다.
◈ 전동성당 ◈
- 종 목 : 사적 제288호
- 소재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完山區) 전동(殿洞)
전동성당은 1914년에 준공된 서양식 근대건축물이다. 원래 전라감영(全羅監營)이 있던 자리이며, 천주교 신자의 순교지이기도 한 이 곳에 1889년 프랑스의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보드네(한자명 尹沙物)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V.L.프와넬(한자명 朴道行) 신부의 설계로 건물이 완공되었다. 호남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로, 평지의 성당으로는 대구 계산동(桂山洞) 성당과 쌍벽을 이룬다.
화강석을 기단(基壇)으로 사용한 붉은벽돌 건물로서, 본당과 측랑(側廊)의 평면 구성에다 내부는 둥근 천장으로 되어 있다.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작은 종탑들은 조화로운 입체감을 창출, 건물의 상승감을 더해 준다. 종머리는 로마네스크의 주조(主調)에 비잔틴풍(風)이 가미되어 있어 건물 본체와 잘 어울린다. 1988년 화재로 건물 일부가 소실되었다.
◈ 완주 송광사 ◈
- 소재지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송광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천년 고찰로 신라 경문왕 7년 (867년)에 구산선문의 개산조인 보조체징선사가 개창하였다. 원래의 사명은 백련사였으며, 현재의 일주문이 3km밖 나들이라는 곳에 서있던 대찰이었으나, 역사의 변천속에 거의 폐찰이 된 것을 순천 송광사의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중창을 발원하신 후 현재의 도량 전각들은 1600년대 보조 지눌국사의 법손들이 대대적인 불사를 추진한 것이다. 특히 병자호란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왕세자를 청나라에 볼모로 보낸 인조대왕이 두 왕세자의 무사환국과 국란의 아픔을 부처님의 가호로써 치유하고자 대대적으로 중창한 인조대왕의 호국원찰이다. 이렇듯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기위한 호국원찰이어서인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대웅전, 나한전, 지장전의 불상이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리곤 한다. 특히 대웅전의 불상은 KAL기 폭파사건, 12.12사건, 군산 훼리호 침몰사건, 강릉 잠수함 출몰, 그리고 97년 12월 2일부터 13일까지 엄청난 양의 땀과 눈물을 흘려 I.M.F한파를 예견하였다고 한다.
전국 4대 지당기도량답게 최대 크기의 지장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나한전의 석가여래와 500의 나한상은 대웅전과 함께 많은 이들의 참배처가 되고 있으며 평지가람으로 노약자가 편히 올수가 있으며, 대형버스 30대가 주차할 수 있는 대형주차장과 식당이 준비되어 있고, 봄철 송광사 벚꽃 터널의 아름다움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대웅전, 삼세불상, 아(亞)자형 종각, 사천왕상 등 4점의 보물 문화재와 8점의 유형 문화재 등 역사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사찰이다.
◈ 위봉산성 ◈
- 종 목 : 전북기념물 제17호
- 소재지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1675
- 시 대 : 조선시대
1675년(숙종 1)에 축성하고, 1808년(순종 8)에 관찰사 이상황(李相璜)이 중수하였다.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慶基殿)에 있는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것으로 동학농민운동 때 전주부성(全州府城)이 동학군에 의해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피난시킨 일이 있다.
당시의 규모는 너비 3m, 높이 4~5m, 길이 16㎞이며, 서·동·북 3개 소의 성문과 8개의 암문이 있었고, 성 안에는 4~5개의 우물과 9개의 못을 팠다. 지금은 성벽 일부와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이 남아 있는데, 문 위에 있던 3칸의 문루(門樓)는 붕괴되어 없어지고 높이 3m, 너비 3m의 아치형 석문만 남아 있다. 전주 8경의 하나로 성 안에는 위봉사가 있고, 북방수구처에는 위봉폭포가 있다.
◈ 위봉사 ◈
- 소재지 :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604년(백제 무왕 5)에 서암(瑞巖)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고, 극락전중수기(極樂殿重修記)에 전설적인 설화가 실려 있을 뿐이다.
이에 따르면 신라 말기, 한 서민 출신의 최용각(崔龍角)이 말을 타고 전국 산천을 유람할 때, 봉산(鳳山) 남쪽에 이르러 등나무 덩굴을 잡고 겨우 산꼭대기에 올라가니 어떤 풀섶에서 상서로운 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는 세 마리 봉황새가 날고 있어 그는 여기에 절을 짓고 위봉사(圍鳳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 일 시 : 2006년 6월 13일(화) 오전 08:00 정각 출발
◈ 장 소 : 전북 전주시
??????(풍남문, 경기전, 전동성당, 완주 송광사, 위봉산성과 위봉사)
◈ 출발장소 : 수원문화원(수원시민회관 주차장)
◈ 회 비 : 회원 20,000원 / 비회원 30,000원 선납(중식 포함)
◈ 인 원 : 90명 (선착순)
◈ 준 비 물 : 카메라, 필기도구
◈ 접수 및 문의 : 수원문화원 사무국 ☎ 244-2161∼3
????★★ 역사문화탐방 회비 납부는 계좌이체가 가능합니다.★★
??????기업은행 331-000534-01-206 (예금주 : 수원문화원)
※ 문화탐방 코스는 현지 사정에 의하여 변경될 수 있습니다. ※